• 독서후기

    우리 아이의 자존감 키우기

    [목차] 자존감이란? 자존감의 핵심 4요소 고유한 존재 인식 유아의 자존감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 1. 자존감이란? 자존감(Self-esteem)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이다.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삶에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 확신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자존감을 키우는 방법  2. 자존감의 핵심 4요소 자녀가 자람에 있어 자존감을 기르기 위해서는 아래 4가지 요소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존감: 자기 자신에 대한 감정과 생각 의사소통: 서로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규칙: 어떻게 느끼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법칙 관계맺기: 가족 이외의 사람 및 조직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문제가 있는 가정에서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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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티노플 함락전쟁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의 마지막 수도로 알려져 있으며 오스만 제국의 황제 메흐메트 2세 때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전에도 많은 침략을 받았으나 함락되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자세히 한 번 들여다보면 콘스탄티노플은 높은 3중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폭 20m 가량의 해자도 포함하고자 있었죠. 해자를 넘으려면 그냥 넘을 수가 없어서 사다리나 건널수 있는 어떤 장비가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궁수들로부터 화살 공격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해자를 넘는다고 해도 높은 성벽이 남아있어 이를 뚫고 성을 함락하기란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습니다. 3중 성벽이 난공불락의 첫 번째 요인입니다. 두 번째는 바로 성을 둘러싼 바다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로 공격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육로는 앞서도 말한 3중 성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고 바다로는 해협과 골든 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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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백년전쟁

    백년전쟁의 배경   백년전쟁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실제로는 116년간이나 진행된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기점으로 두 나라의 영토가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이 전쟁은 왕위계승문제가 명분상 원인이 되어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왕국은 필리프 3세가 죽고 후손으로 3명의 왕자가 있었으나 왕위를 물려받고 얼마 못 가 모두 사망합니다. 3명의 왕자와 함께 이사벨라라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이 동생이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와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는데 이 아들을 후계자로 올립니다. 하지만 프랑스로써는 당연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세 번째 왕자(샤를 3세)의 사촌인 필리프 6세를 왕위에 등극시켜버립니다. 잉글랜드는 당연히 화가 났고 두 나라의 갈등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백년전쟁을 위한 명분상의 원인은 왕위 계승이었으나 실제 원인으로는 바로 영토분쟁입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몇 개의 지역에서 이권을 차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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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세계 정복 2부

    금나라 정벌   칭기즈 칸은 몽골을 정복한 후 금나라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당시 금나라는 여진, 유연, 한족, 거란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나라였으며 인구도 5000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국력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몽골은 유목민을 통일했다고 해도 고작 100만 명 정도였으므로 규모가 50배가 차이나는 상대였습니다. 금나라의 군대도 거란족과 여진족의 기마병과 한족의 보병 부대가 모두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어 금나라로서는 몽골은 크게 신경을 쓸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금나라로서도 몽골의 기병은 매우 까다로운 상대였습니다. 말을 타는 능숙함도 있지만 말 위에서 활을 쏘고 칼도 잘 다루기 때문에 기병대 기병으로 맞붙는다고 해도 승산이 낮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몽골이 쳐들어오자 수성으로 응수하기로 생각합니다. 성을 높이 쌓아두면 아무리 기병이 강한 몽골이라도 쳐들어올 방법이 없고 몽골은 특히 공성전에 약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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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의 세계 정복 1부

    칭기즈 칸과 몽골군의 특징 동양에는 서양의 알렉산더 대왕에 버금가는 위대한 인물이 탄생합니다. 바로 칭기즈 칸으로 아시아에서부터 일부 유럽까지를 점령하며 당대 가장 거대한 세운 인물입니다. 몽골은 부분이 초원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는 거대한 국토를 지녔으나 인구는 30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징기스 칸은 몽골 여기저기에 흩어져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최초의 ‘칸’ 최고 지도자가 됩니다. 칭기즈 칸의 정복 전쟁은 1209년부터 시작되지만, 당시 인구는 100만 명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낮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몽골이 차지한 영토는 로마가 400년에 걸쳐 정복한 지역보다도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몽골은 유목 민족으로 아주 어려서부터 말을 타고 유목 생활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가축에게 먹일 풀이 떨어지면 초원에서 다른 초원으로 계속해서 이동하며 사는 유목민의 특성상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고 농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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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에니 전쟁 3부

    한니발과 스피키오의 전투 카르타고는 스피키오에게 항복을 하고 한니발을 회군시키지만, 막상 한니발이 돌아오자 자신감을 되찾고 반격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투가 바로 자마 전투입니다. 한니발의 군대에는 매우 막강한 기병이 있었는데 누미디아 기병이라고 합니다. 이 기병대는 주로 도시군이 아니라 용병으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사실 카르타고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도 매우 탐내던 용병이었습니다. 즉 용병은 사실 상황에 따라 카르타고를 지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스키피오는 즉시 누미디아의 왕을 만나 설득하고 이로 인해 한니발은 누미디아로부터 기병을 지원이 끊기게 되고 이 기병 부대를 반대로 스키피오가 이용하게 됩니다. 자마 전투에서 양쪽 모두 누미디아 기병을 거느린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문제는 스키피오의 기병이 훨씬 우세했다는 점입니다. 두 지휘관은 군대를 매우 신중하게 검토하고 전력을 세웁니다. 카르타고군은 시키피오의 군대보다 그래도 전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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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에니 전쟁 2부

    칸나에 전투 칸나에 전투는 가장 유명한 전투로 카르타고는 한니발이 지휘를 하고 로마는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과 타렌티우스 바로 두 명이 군을 지휘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는 로마군 5만 명이 궤멸당하는데,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니발 장군이 지휘한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으며, 현대전으로 오기 전까지 5만 명이 몰살당하는 경우는 동서양의 전쟁역사 모두 보더라도 매우 드문 수치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한니발은 어떠한 전략으로 전투를 준비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칸나에 투입된 전투병력을 비교해 보면 로마군은 보명 8만 명, 기병 7천 명이고 카르타고는 보병 4만 명에 기병 1만 명이었습니다. 병력은 로마군이 약 2배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한니발은 알렉산더 대왕이 주로 사용하던 전술을 도입합니다. 대형의 가운데는 보병을 배치하고 양 날개를 빠른 기병으로 배치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형태와는 다르게 가운데 보병을 활모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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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에니 전쟁 1부

    대제국의 분열   시대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가 정복한 광활한 대 제국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가 남긴 광대한 제국을 누가 다스릴 것이냐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난 후 왕위 계승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알렉산더의 아들은 겨우 2살이었고 남은 건 부하들뿐이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영웅적 심리가 강해 2인자를 따로 키우지 않았고 권력을 고르게 부여받은 부하들은 결국 권력다툼으로 이어져 나라가 분열되고 맙니다. 7명의 장군들로 시작해 4명만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되는 이 과정에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가장 큰 세력을 가진 안티고노스가 앞서나가자 힘을 합쳐 안티고노스를 멸망시킵니다. 남은 세력 간에 또 쟁탈전을 벌입니다. 이 당시는 싸움과 배신이 난무하는 혼란한 시대였습니다. 로마와 카르타고   로마는 작은 국가로 출발하지만 여러 위기를 극복하면서 점차 성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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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케도니아와 이수스 전투

    마케도니아   페르시아 전행 후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전쟁(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고 이 전쟁은 약 30년간 장기화되었습니다. 결국 스파르타가 전쟁에 승리하지만 애석하게도 두 국가는 모두 쇠퇴하게 됩니다. 힘 빠진 스파르타와 당시 북방에 자리 잡고 있던 도시국가 테베와 전쟁이 발생하는데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스파르타가 패하고 맙니다. 당시에도 스파르타는 강력한 전술인 팔랑크스 사용하지만, 테베는 사선진이라는 진법을 활용해 스파르타를 격파해버립니다. 테베는 이후 마케도니아와 전쟁이 발발하는데 마케도니아가 테베를 기병과 보병을 활용하여 테베를 굴복시킵니다. 테베에 이어 그리스 도시국가를 모두 정복합니다. 마케도니아의 전술 : 망치와 모루   앞서 이야기했던 그리스 도시국가의 경우 강력한 보병이 주력이라고 하면 마케도니아는 넓은 초원지대를 기반으로 한 기병을 주력으로 하였습니다. 테베가 위치한 테살라 지방인 그리스 북부부터 마케도니아까지 좋은 말과 기병을 양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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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페르시아 전쟁(2부)

    3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는 두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더욱 강성한 나라로 발전하고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원정을 다시 준비하였으나 숨을 거두고 왕위를 계승한 크세르크세스가 등장하면서 더욱 막강한 군사력을 갖춥니다. 크세르크세스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두 번의 패전을 설욕하기 위해 그리스 원정을 3년간 준비합니다. 육군 10만, 해군 20만으로 총 30만 대군을 갖춘 막강한 전력으로 그리스원정에 나섭니다. 마라톤 전투 패에 대한 복수와 함께 서쪽으로 더욱더 영토를 확장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영화 <300>을 통해 잘 표현되어있듯이 크세르크세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사신을 보내 순순히 복종할 것을 제안하지만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사신을 모두 죽여버리고 페르시아는 계획대로 대규모 침공을 감행합니다. 테르모필레 전투 아테네는 해군이 강했던 반면, 스파르타는 육군이 강했다. 육지에서는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이 정예군을 이끌고 육지로 침공하는 10만의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페르시아군에…